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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군의 암구호에 대해 알아보자

댓글 : 2 조회 : 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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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문명세계를 통틀어 가장 선진적이고 체계적이었던 군대답게

로마군 진지에서는 매일 새로운 암구호를 정했다.

폴리비오스는 로마군의 지휘관이 일몰 직전이면 앞으로 24시간 동안 쓰일 암구호를 정했다고 전한다.

당직사령은 정해진 암구호를 밀랍판에 기록하여 당직사관들에게 전달했고,

이 밀랍판은 당직사관들이 암구호를 숙지하는 즉시 엄격하게 다시 회수되었기에

당일의 암구호를 모른 채 로마군 진지에 들어가려 하다간 누구나 호되게 경을 칠 수밖에 없었다.



해가 지면 각 분대에서 한 명씩 경계근무자로 차출되어 당직사관에게 그날 밤의 암구호를 전달받았다.

보초들은 암구호를 숙지한 뒤 테세라라고 불렸던 목판을 지급받았고,

밤중에 당직사관은 숙영지 야간순찰을 돌면서 목판을 차례대로 회수, 이튿날 아침이 밝으면 당직사령에게 제출했다.

이러한 절차를 통해 당직사관이 제대로 순찰을 돌았는지, 근무자들은 경계근무를 제대로 섰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로마의 유서깊은 '민속놀이' 한마당이 열리는 시즌이 오면, 

내전에 임하는 양측 진영 모두 비슷한 군단병의 복장을 하고 있다 보니

특히 야간전이 벌어지기라도 하면 암구호가 피아식별을 할 유일할 수단이 되었으므로 극히 중요해졌다.

탈영병이 적군에게 암구호를 알려 주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전투가 벌어지기 직전에 서둘러 암구호를 바꾸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파르살루스에서 로마의 역사가 어떻게 흐를지를 정할 결전이 벌어지기 전날 밤이었던 기원전 48년 8월 8일에

카이사르는 율리우스 가문이 섬기는 조상신이었던 비너스 여신의 가호를 빌며 "승리의 여신 비너스"를 암구호로,

폼페이우스 마그누스는 "불굴의 헤라클레스"를 암구호로 정했다고 전해진다.



암구호는 보통 한 단어 혹은 한 문장으로 이루어졌는데

제정 시대가 되자 황제가 친히 암구호를 정해 로마에 있을 때는 근위대에, 

친정에 나섰을 때는 휘하 직속 부대들에 내려 주는 전통이 생기면서, 이런저런 흥미로운 일화들도 늘어났다.



비록 뇌성마비가 있었지만 지성인이었던 클라우디우스 황제는 종종 서사시의 한 구절을 암구호로 정하곤 했다.

네로는 나중에 자객을 보내 이건 니 아들이 보내는 칼! 하고 자기가 들어 있던 그 배를 쑤셔버리게 할 어머니를 위해

암구호를 "최고의 어머니"로 정했었다는 아이러니한 일화가 전해진다.

디오 카시우스에 의하면, 마지막 오현제, 철인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서기 180년 숨을 거두기 전날 밤에 다음날의 암구호를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가거라. 짐은 이미 지고 있으니." 로 정했다고 한다.



심지어 암구호 때문에 자기 무덤을 판 황제도 있었다.

디오와 수에토니우스는 칼리굴라가 특히 사내답기로 이름났던 근위대의 한 군사호민관(대대장)을

빵먹듯이 조롱했다고 이야기한다.

이 군사호민관은 자기가 황제에게 암구호를 물어보아야 할 차례가 오면 너무나 두려워했는데,

칼리굴라가 그를 여자 취급하며 그에게 "사랑"이나, "비너스(사랑의 여신)"같은 군호를 일부러 정해주곤 했던 것이다.

결국 나중에 칼리굴라 암살에 가담하게 된 그가

이미 칼빵을 맞고 극장 바닥에 쓰러진 칼리굴라의 쥬지를 칼로 쑤신 것도 별로 이상할 게 없을 것이다.





- 크리스 스카레 저 "로마 황제",

스티븐 콜린스 저 "로마의 전설을 만든 카이사르 군단" 에서 





이 게시물에 달린 코멘트 2
유동닉사학도 2022.04.15 05:14  
최고의 어머니추
호로다 2022.04.15 05:14  
그럼 지금 쓰이는 암구어 형태는 고대로마 시절의 쓰이던 것을 답습하고 있는 건가요?